Quantum Gas Lab  @ Seoul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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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크로스로드 2011년 9월호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Link)

 

 

 

극저온 원자기체로 양자물성 흉내내기

 

신용일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물질이 주어진 환경과 온도에 따라 다양한 상태를 갖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물을 끊이면 수증기가 되고, 물을 냉동실에 넣어두면 얼음이 된다. 온도에 따라 물의 상태가 변하는 것이다. 그럼, 온도란 무엇일까? 우리는 경험적으로 온도를 알고 있지만, 물리학에서는 이를 정량화하여,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에 비례하는 값으로 정의하였다. 방안의 공기가 섭씨 20도라고 할 때, 공기에 포함되어 있는 분자들의 평균 속도는 대략 300 m/s 정도가 된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이다. 온도의 정의가 이러하다면 우리는 모든 입자들이 가장 조용한 상태에 있는 최저 온도를 자연스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절대 영도라고 한다. 켈빈(Kelvin, K)이라는 좀 더 물리적인 온도 단위를 사용하면, 절대영도는 0 K, 섭씨 영도는 273 K에 해당하고, 섭씨 1도차는 1 K차와 동일하다.

 

본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극저온 원자기체는 수백 나노 켈빈의 온도까지 냉각된 원자기체이다. 현대 사회에서 나노(nano, 10-9)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생활 수식어이지만, 물체의 온도가 나노 켈빈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은 절대 영도를 향한 열정을 지닌 과학자들에게는 무척 흥분되는 소식이다. 수백 나노 켈빈을 원자의 속도로 환산하면 약 수 cm/s에 해당하는데, 이는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움직임이 철저하게 통제되어, 보다 조용하고 상세한 물리 현상 연구가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극저온 원자기체는 물리량의 정밀 측정 및 양자정보 기술 구현 등을 위한 새로운 시료로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극저온 원자기체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 분야 중 다체계 양자물성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다체계 양자물성 발현이란, 20세기 물리학에서 새로이 도입되어 발전된 개념들 중 하나로, 물리계를 구성하는 입자 개개의 움직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물성들이 상호작용하는 많은 수의 입자들의 단체적인 효과로 얻어짐을 일컫는 말이다. 저온에서 관측된 마찰 없이 흐르는 초유체와 저항없이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초전도체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전체가 부분의 합과 다르다는 이야기는 사회학, 문학 등에서도 접할 수 있어 이해가 될 듯 한 주제이지만, 양자물성 발현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현대물리학에서 아직 얻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선 원자기체를 어떻게 나노 켈빈 영역까지 냉각할 수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나노 켈빈 냉각 기술

원자기체를 나노 켈빈의 극저온으로 냉각하기 위해서, 레이저 냉각과 증발 냉각이라 불리는 기술들을 사용한다. 원자는 빛을 흡수하고 방출하면서 힘을 받게 되는데, 원자의 움직임과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레이저 빔을 선택적으로 잘 흡수하고 방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원자의 움직임을 늦추는 것이 레이저 냉각 기술의 핵심이다. 도로에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구급차가 다가 올 때와 지나갈 때 다르게 들리듯이, 원자도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특정 방향의 레이저에 선택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마치 날아가는 야구공에 수만 개의 탁구공을 반대 방향으로 충돌시켜 야구공이 느려지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레이저 냉각을 통해 원자의 움직임은 대략 수 백 마이크로(micro, 10-6) 켈빈까지 늦춰지게 된다. 여기서 냉각 온도의 한계는 레이저를 구성하는 광자 하나가 갖는 운동량에 기인한다.

 

나노 켈빈 영역으로 가기위한 그 다음 냉각 기술은 증발 냉각이다. 이는 원자기체를 구성하는 원자들 중 빠르게 움직이는 원자들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여, 남아 있는 원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뜨거운 커피를 빨리 식히기 위해, 현명한 분들은 커피 잔 뚜껑을 열어 놓는데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은 원자기체에서 단 한 개의 원자만을 제거하여 기체의 온도를 나노 켈빈까지 냉각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균 운동 에너지의 1000만 배 이상 되는 운동 에너지를 갖는 원자, 즉 굉장히 빠른 원자가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데, 만일 우리가 이러한 원자를 잘 찾아서 제거한다면 쾌속 냉각이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원자선별 작업을 위해서는 우주 나이 정도의 꽤 긴 시간과 많은 정보가 요구될 것이다.

 

여기서 날카로운 독자라면 당연히 갖고 있을 질문에 답을 하도록 하자. 왜 기체가 수백 나노 켈빈까지 냉각이 되었는데, 액체 혹은 고체로 상태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일까? 당연히 이렇게 낮은 온도에서 원자들은 고체 상태를 이루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런데 원자들이 조밀하게 모여 액체나 고체를 만들기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개의 원자가 동시에 충돌하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두 개의 원자만이 충돌하는 경우,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두 원자는 서로 붙어 있기가 어려운 반면, 세 개의 원자가 동시에 충돌하면 두 개의 원자는 서로 붙고 나머지 한 개의 원자가 잉여의 운동에너지를 갖고 달아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루는 원자기체의 밀도는 1 cm3 1015 개 정도로 방안 공기의 밀도보다 100만 배 이상 낮다. 따라서 고체화를 위한 세 원자 충돌 사건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고, 실재 실험에서 극저온 원자기체 시료는 기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체의 간섭현상. (Science 31, 637 (1997), 2001년도 노벨 물리학상).

 

 

극저온 원자기체의 초유체성

극저온 원자기체를 이용한 양자물성 연구는 1995년 보즈-아인슈타인 응집 현상(Bose-Einstein Condenation, BEC)을 최초로 관측하면서 시작되었다. 원자들이 복합 보존 입자일 경우, 낮은 온도에서 많은 수의 원자들은 동일한 바닥 양자상태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때 원자들은 외부 자극에 대해 단체적인 반응을 보이며, 마찰 없이 흐르는 초유체성을 띠게 된다.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은 1920년도 양자역학 태동기에 아인슈타인에 의해 제시된 개념으로, 현재 관측된 대부분의 초유체 현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이론 틀을 제공한다. 그림1은 독립된 두 개의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체를 공간상에 겹쳐 놓았을 때 형성되는 원자 간섭무늬를 측정한 실험결과로서,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체가 지닌 위상 결맞음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개의 백열전등 빛을 스크린 상에 겹치면 밝고 어두운 부분이 번갈아 나타나는 간섭무늬가 생기지 않는 반면, 같은 색의 광자로만 이루어진 두 개의 레이저 빔을 스크린 상에 겹치면 간섭무늬가 생기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이 때문에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체를 '원자 레이저'로 소개하기도 한다.

 

최근 10년 동안 양자기체 실험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그 연구의 범위가 폭 넓은 물리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광격자(Optical Lattices) 기술이다. 원자는 자신이 위치한 곳의 레이저 빔 세기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갖게 되는데, 만일 진행방향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레이저 빔들이 겹쳐져 있는 공간에 원자가 위치한다면, 원자는 만들어진 레이저의 간섭무늬로 인해 주기적인 격자 구조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광격자 기술을 이용하여, 마치 전자들이 고체 결정 안에서 느끼는 환경과 비슷한 실험조건을 원자들에게 제공하게 된다. 특히, 레이저 빔의 배열과 세기를 조절하면, 다양한 격자 구조와 격자 결합상수를 조성하고, 더욱이 동적으로 조절할 수가 있다. 최근 광격자에 포획된 초유체 원자기체 시료가 격자간 결합상수가 작아지면서 절연체로 변하는 Mott 절연체 양자 상전이 현상이 실험으로 관측된 바 있다. 이는 산화물 계열의 고체에서 관측된 현상과 유사하다.

 

양자기체 실험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입자간의 상호작용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다. 양자물성은 결국 구성 입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입자들의 상관성에서 기인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상호작용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체계적인 양자물성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고체 실험의 경우, 시료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반면, 양자기체 실험에서는 Feshbach 충돌 공명을 이용하여, 입자간의 상호작용의 세기를 외부 자기장으로 조절할 수가 있다. 최근 실험에서 자연이 허락하는 최대치의 입자간 상호작용을 갖는 페르미 기체가 구현되었고, 여기서 초유체 상전이 임계 온도가 페르미 온도의 15%에 해당함이 확인된 바 있다. 이는 페르미계에서 관측된 초유체 상전이들 중 최대 상대 임계 온도이다.

 

이밖에도 중성 원자들에게 라만 레이저 빔을 혼합해 유효 스핀-궤도 결합 효과를 갖도록 하거나, 자기 쌍극자를 이용하여 원거리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 실험기술도 최근 개발되어 연구에 접목되고 있다. 다양하고 깨끗한 실험환경의 제공과 정밀한 실험변수의 통제는 양자물성 연구를 위한 양자기체 실험의 큰 매력들이다.

 

 

아날로그 양자 시뮬레이터

미래사회의 성장 동력 중 하나는 우수한 성능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물성에 대한 깊은 과학적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온 초전도체 및 양자 자성체 등의 양자물질들은 그 우수한 성질들로 인해 발견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으나, 여전히 현대물리학의 난제로서 아직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얻어지지 않고 있다. 관측된 양자물성의 중심 원리를 찾기 위하여, 간단한 모형이론에 근거한 접근들이 많이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실재 물질을 이용한 실험 연구에서는 실험 변수들에 대한 통제가 제한적이고 또한 완벽히 깨끗한 시료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여, 이러한 모형들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아주 간단한 유효이론 모형조차도 그 해가 해석적으로나 수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존의 실험연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필자는 극저온 양자기체를 이용한 양자물성 연구를 아날로그 양자 흉내내기(Analog Quantum Simulation)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양자 흉내내기는 1980년도 초반에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제시한 개념인데, 이 당시 파인만은 양자물리를 흉내 낼 수 있는 범용 양자 컴퓨터의 가능성에 대해 소개하였다. 고도의 실험변수 통제가 가능한 양자기체를 이용하여 모형이론이 제안하는 유효 물리계를 정확히 구현하고, 이에 대한 정밀한 측정을 통해 예견되는 양자물성들을 검증하는 과정은 파인만이 피력했던 양자물리 흉내내기의 많은 모습들을 충분히 갖추었다. 몇 가지 단위 양자연산의 순차적인 조합으로 양자계산을 수행하는 현재의 양자 컴퓨터와 차이를 두어, 필자는 이러한 양자기체 실험을 아날로그양자 흉내내기로 구별한다.

 

양자물성 흉내내기를 통해 얻어진 물리적인 통찰은 관측 현상의 이해를 넘어서서, 새로운 기능을 보유한 신물질을 설계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일예로, 광격자 안의 페르미 원자기체 시스템은 강상관계 물질에서 전자들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핵심 모델인 Hubbard 모델을 구현한다. 격자간의 결합 상수 및 격자 우물 안에서의 상호작용의 크기 등이 자유롭게 조절될 수 있어 다양한 실험적 검증이 가능하다. 구리 산화물 계열의 고온 초전도체에 대한 중요한 직관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기체 전망, 기대 과제

장난감 중에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LEGO가 있다. 단조로워 보이는 작은 조각들이지만, 필요한 부품들을 조립하면, 상상 가운데 원했던 많은 것들을 적절히 만들 어 낼 수 있다. LEGO를 사용한 예술작품들도 등장하고, LEGO 아티스트라는 직명도 생겨나는 것을 볼 때, LEGO의 가능성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과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양자물성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LEGO와 같은 실험체계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LEGO와 직접적으로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여러 기술 요소들의 조합으로 사고 실험에서만 논의되어왔던 물리현상들을 탐험할 수 있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필자는 양자기체 실험연구가 이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적극적으로 상상해 본다.

 

나노 켈빈보다 더 낮은 온도로 안정적으로 냉각하는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레이저 냉각 기술이 도입되면서 원자 분광학의 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증발 냉각 기술이 도입되면서 비로소 나노 켈빈의 양자기체를 구현할 수가 있었다. 더 광범위한 양자물성 연구를 위해 이제 새로운 냉각 기술의 도입은 현재 양자기체 커뮤니티의 공통된 기대이며 요구이다. 절대 영도에 가까워지려는 노력들에 획기적인 성과가 있을 때마다 역사적으로 노벨상은 계속 주어져 왔다. 앞선 레이저 냉각과 증발 냉각 방식처럼 의외로 간단한 착상에서 새로운 냉각 방식이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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